기원전 44년 카이사르는 그가 로마인의 자유를 위협한다고 판단한 브루투스, 카시우스 등에게 암살당합니다. 마지막 순간에 카이사르는 자신을 죽이려는 무리에 브루투스가 있는 것을 보고 ‘브루투스, 너도(너마저)!’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브루투스는 카이사르가 관용을 베풀어 살려준 반대파 중 한명이자 유명한 바람둥이인 카이사르와 깊은 관계에 있던 세르빌리아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저 말은 죽음의 순간에서 관용과 믿음을 베풀었던 사람의 배신을 탄식하는 극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고 배신에 대한 관용구의 하나로 지금까지 전해져오고 있습니다.(*1)
덧붙여 카이사르가 죽은 장소는 그의 오랜 숙적이자 결국 카이사르에 의해 마지막 순간을 맞게 되었던 폼페이우스가 만든 집회소(curia pompeia*2)라는 점, 더군다나 그의 조상(彫像) 아래였다는 점 역시 극적인 요소를 더합니다.
항상 부분만 봐서 몰랐는데 이 그림, 원래 이렇게 큰 그림이었네요.
카이사르가 외친 이 ‘브루투스, 너마저!’(Et tu, Brute!)는 다른 형태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바로
‘Et tu, Brute, fili mi!’인데요, 번역하면 ‘내 아들, 브루투스, 너마저!’ 혹은 좀 더 의역해서 ‘내 아들과 같은(아들처럼 생각하는) 브루투스, 너마저!’(*3)가 됩니다.
그런데 이것을 카이사르와 사생활과 연결시키는 분들은 좀 더 멋진 해석으로 바꾸기도 합니다.
“Et tu, Brute, fili mi!” - “브루투스, 너마저 내 아들이더냐!”
덤...1. 과연 카이사르가 저 말을 할 정도로 브루투스를 믿었는지도 의문이 들기 때문에 오랫동안 카이사르를 종군했고 그가 옥타비아누스에 이은 자신의 제2상속자이자 유언집행인 중 하나로 지명했던 다른 브루투스(Decimus Junius Brutus Albinus)를 보고 한 말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저쪽 브루투스(Marcus Junius Brutus)로 하는 쪽이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는 데에는 좋습니다.
서양에서 배신에 대한 또 하나의 극적인 장면은 ‘유다의 입맞춤’으로 단테의 신곡(神曲)에서 유다와 브루투스는 배신자로서 같은 취급을 받습니다.
2. 포룸 로마눔에 있는 본래 원로원(집회소)은 너무 작아서 이미 상징적 건물로써만 의미가 있었고 회의는 다른 건물에서 열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카이사르가 참석하려 하다가 암살당한 회의는 ‘폼페이우스의 집회소’에서 열릴 예정이었습니다. 현재 건물은 남아있지 않지만 위치는 ‘또레 아르젠티나 광장’(Largo di Torre Argentina)과 ‘깜포 데 피오리’(Campo de’Fiori) 사이입니다.
3. 이 말이 ‘브루투스, 카이사르 아들설’의 원인인 것도 같지만 어디서 나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혹시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줄리어스 시저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