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5월 28일
'로마인 이야기'의 밀라노 칙령
한동안 검색어에 '밀라노 칙령'이 보이길래 '이런 데까지 관심을 갖는 신기한 사람들이 있구나'(^^;)하고 의야해 했는데 도올 선생 덕분이었네요. 어쨌든 말이 나온 김에 현재 넷상에 퍼져있는 '로마인 이야기'의 밀라노 칙령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시오노 나나미 선생의 '로마인 이야기 13-최후의 노력'에는 밀라노 칙령이 나옵니다. 그 내용은 넷 상에도 많이 퍼져 있습니다...라기보다 넷 상에서는 '로마인 이야기'의 밀라노 칙령 외에는 찾을 수 없습니다. 솔직히 불안하긴 하지만 '로마인 이야기'에 소개된 밀라노 칙령이 우리에게 소개된 유일한 형태가 아니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로마인 이야기'의 밀라노 칙령은 문제가 있습니다.
밀라노 칙령은 포고문 형태로 전해지지 않습니다. 1차 사료로는 유일하게 락탄티우스의 '박해자들의 죽음에 대하여'에 동방황제 리키니우스가 휘하의 총독들에게 보내는 공식 서한의 형태로 실려 있습니다. ‘~한 일에 대해 ~게 결정했으니 ~을 하기 바란다’는 내용의 편지는 법적인 특징이 강했던 로마 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듯 이유와 목적부터 시작해 집행 부분에 이르러서는 사례 하나하나를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 전체를 속도감을 중시하는 ‘이야기’인 '로마인 이야기'에 실을 수는 당연히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문제는 시오노 선생이 종종 그러하듯이 자신의 해석으로 없는 말을 만들었고 그 부분은 밀라노 칙령 전체에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본좌 시오노 선생의 글을 좋아하지만 가끔 이러시는데 아주 곤란합니다. 골룸^^;)
문제가 되는 것은 선언부분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로마인 이야기'에는 다음과 같이 실려 있습니다.
이 문장과 가장 가까운 라틴어 원문은 다음입니다.
*내용을 집중하기 위해 약간 거리가 있는 부분을 괄호 안에 넣었습니다.
일단 뜻에 무리가 있더라도 단어를 모두 사용해 내용을 있는 그대로 옮기면,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불행히도 ‘화해와 융화로’라는 부분은 라틴어 원문 상에 없습니다. 이 부분만이 아니라 전체를 살펴봐도 ‘화해와 융화’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습니다. 동사 praestare 역시 ‘화해와 융화로 이끌다’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문맥을 살펴봐도 ‘화해와 융화’라는 목적을 찾기 힘듭니다. 단지 “우리 시대의 평온을 위해”pro quiete temporis nostri와 “공공의 평온에”quieti publicae를 가장 비슷한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평온’이 반드시 ‘화해와 융화’는 아니겠지요.
결국 ‘화해와 융화로 이끌어 주기를’은 이 시대와 칙령에 대한 작가의 해석입니다. 작가의 소설가적인 상상과 해석은 절대 문제 삼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며 오히려 ‘로마인 이야기’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해석’을 원문인 것처럼 끼워 넣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이것은
‘이야기’인 이상 재미를 위해 형식을 바꾸고 내용을 편집하는 것에 불만도 없을뿐더러 비판해야 한다고 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전체 글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는 내용, 그것도 작가의 해석을 원문인 양 첨가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비록 소설가가 쓰는 이야기일지라도 사건 자체를 다루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역사관을 볼 수 있는 부분이며 많은 사람에게 읽히는 영향력 있는 내용일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소설가가 쓰는 ‘이야기’이기에 충분히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동시에 각권 말미에 방대한 참고 도서 목록을 나열하는 열의를 가졌다면 적어도 사실 부분에 있어서는 사료에는 충실해야 합니다. 없는 부분은 상상할 수 있지만 자신의 해석을 첨가하기 위해 있는 것을 마음대로 바꿔서는 안 됩니다. 역사 소설은 그것이 ‘역사’ 소설인 이상 사료를 다루는 자세도 평가 대상입니다.
물론 시오노 나나미 선생의 ‘로마인 이야기’는 읽을 가치가 있는 재미있는 책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물론 관심이 있을 때의 일입니다만^^;) 이런 부분을 비판할 수 있다면 더욱 재미있을 겁니다.
참고로 하기 위해 영어와 이탈리아어 번역을 소개합니다.
오히려 이탈리아어 번역은 동사를 ‘화해와 융화로 이끌다’로 다시 번역할 여지가 있지만 이어서 오는 직접 보어(영어의 직접 목적어에 해당) 때문에 그렇게 번역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사실 ‘로마인 이야기’ 번역은 이쪽이 약간 의심스럽긴 합니다.
ps. 항상 무서운 건 ‘로마인 이야기’만 읽고 ‘가장 충실하고 깊이 있는’ 로마사를 읽고 안다고 믿는 겁니다.
ps.2 다른 매체를 통해 밀라노 칙령을 접한 분들이 그것을 넷 상에 올릴 만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믿어야겠지요? 아니면 로마인 이야기가 저작권에 대해 너그러운 입장이었을까요?^^;
시오노 나나미 선생의 '로마인 이야기 13-최후의 노력'에는 밀라노 칙령이 나옵니다. 그 내용은 넷 상에도 많이 퍼져 있습니다...라기보다 넷 상에서는 '로마인 이야기'의 밀라노 칙령 외에는 찾을 수 없습니다. 솔직히 불안하긴 하지만 '로마인 이야기'에 소개된 밀라노 칙령이 우리에게 소개된 유일한 형태가 아니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로마인 이야기'의 밀라노 칙령은 문제가 있습니다.
밀라노 칙령은 포고문 형태로 전해지지 않습니다. 1차 사료로는 유일하게 락탄티우스의 '박해자들의 죽음에 대하여'에 동방황제 리키니우스가 휘하의 총독들에게 보내는 공식 서한의 형태로 실려 있습니다. ‘~한 일에 대해 ~게 결정했으니 ~을 하기 바란다’는 내용의 편지는 법적인 특징이 강했던 로마 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듯 이유와 목적부터 시작해 집행 부분에 이르러서는 사례 하나하나를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 전체를 속도감을 중시하는 ‘이야기’인 '로마인 이야기'에 실을 수는 당연히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문제는 시오노 선생이 종종 그러하듯이 자신의 해석으로 없는 말을 만들었고 그 부분은 밀라노 칙령 전체에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본좌 시오노 선생의 글을 좋아하지만 가끔 이러시는데 아주 곤란합니다. 골룸^^;)
문제가 되는 것은 선언부분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로마인 이야기'에는 다음과 같이 실려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신이든, 그 지고의 존재가 은혜와 자애로써 제국에 사는 모든 사람을 화해와 융화로 이끌어 주기를 바라면서.”
이 문장과 가장 가까운 라틴어 원문은 다음입니다.
“ut possit nobis summa divinitas(, cuius religioni liberis mentibus obsequimur,) in omnibus solitum favorem suum benivolentiamque praestare.”
*내용을 집중하기 위해 약간 거리가 있는 부분을 괄호 안에 넣었습니다.
일단 뜻에 무리가 있더라도 단어를 모두 사용해 내용을 있는 그대로 옮기면,
그리하여 우리에게 지고의 신성이(, 우리는 그의 종교에 자유로운 마음으로 제헌한다,) 만상 안에서 종전과 같은 그의 자애와 호의를 베풀어 줄 수 있기를.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불행히도 ‘화해와 융화로’라는 부분은 라틴어 원문 상에 없습니다. 이 부분만이 아니라 전체를 살펴봐도 ‘화해와 융화’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습니다. 동사 praestare 역시 ‘화해와 융화로 이끌다’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문맥을 살펴봐도 ‘화해와 융화’라는 목적을 찾기 힘듭니다. 단지 “우리 시대의 평온을 위해”pro quiete temporis nostri와 “공공의 평온에”quieti publicae를 가장 비슷한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평온’이 반드시 ‘화해와 융화’는 아니겠지요.
결국 ‘화해와 융화로 이끌어 주기를’은 이 시대와 칙령에 대한 작가의 해석입니다. 작가의 소설가적인 상상과 해석은 절대 문제 삼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며 오히려 ‘로마인 이야기’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해석’을 원문인 것처럼 끼워 넣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이것은
‘이야기’인 이상 재미를 위해 형식을 바꾸고 내용을 편집하는 것에 불만도 없을뿐더러 비판해야 한다고 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전체 글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는 내용, 그것도 작가의 해석을 원문인 양 첨가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비록 소설가가 쓰는 이야기일지라도 사건 자체를 다루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역사관을 볼 수 있는 부분이며 많은 사람에게 읽히는 영향력 있는 내용일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소설가가 쓰는 ‘이야기’이기에 충분히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동시에 각권 말미에 방대한 참고 도서 목록을 나열하는 열의를 가졌다면 적어도 사실 부분에 있어서는 사료에는 충실해야 합니다. 없는 부분은 상상할 수 있지만 자신의 해석을 첨가하기 위해 있는 것을 마음대로 바꿔서는 안 됩니다. 역사 소설은 그것이 ‘역사’ 소설인 이상 사료를 다루는 자세도 평가 대상입니다.
물론 시오노 나나미 선생의 ‘로마인 이야기’는 읽을 가치가 있는 재미있는 책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물론 관심이 있을 때의 일입니다만^^;) 이런 부분을 비판할 수 있다면 더욱 재미있을 겁니다.
참고로 하기 위해 영어와 이탈리아어 번역을 소개합니다.
“so that the Supreme Deity(, to whose worship we freely yield our hearts,) may show in all things His usual favor and benevolence.”
“cosicché la Divinità suprema(, alla cui devozione ci dedichiamo liberamente,) possa continuare ad accordarci benevolenza e favore.”
오히려 이탈리아어 번역은 동사를 ‘화해와 융화로 이끌다’로 다시 번역할 여지가 있지만 이어서 오는 직접 보어(영어의 직접 목적어에 해당) 때문에 그렇게 번역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사실 ‘로마인 이야기’ 번역은 이쪽이 약간 의심스럽긴 합니다.
ps. 항상 무서운 건 ‘로마인 이야기’만 읽고 ‘가장 충실하고 깊이 있는’ 로마사를 읽고 안다고 믿는 겁니다.
ps.2 다른 매체를 통해 밀라노 칙령을 접한 분들이 그것을 넷 상에 올릴 만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믿어야겠지요? 아니면 로마인 이야기가 저작권에 대해 너그러운 입장이었을까요?^^;
# by | 2007/05/28 00:43 | 세상의 말들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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